그런거없음1 [293932] · MS 2009 · 쪽지

2013-11-26 23:0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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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12학번 합격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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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저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2학년에 재학중인 한 학생입니다. 이런 글을 쓰기에는 조금은 늦은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제가 컴퓨터 앞에 앉게 된 것은 눈물과 고뇌로 점철되어 이상스러울만치 빛났던 그 치열했던 삶의 흔적을 다시금 더듬어보고 그 기억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이유 때문입니다.

딱히 잘하는 것 없었던 중학생때의 저는 운이 좋게도 지방외고시험에 합격하여 외고에 들어가게 됩니다. 중학교때부터 전교 1,2 등을 도맡아 하더온 친구들과는 다르게 저는 눈에 띌 정도로 뛰어난 아이가 아니었던 터라 그렇게 높은 목표도 잡지 않은채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고등학교 1학년 1학기때의 저는 이렇게 표현하기엔 너무도 진부하지만 그냥 정말 평범한 학생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대단한 친구들 틈에서 다행스럽게도 꼴지를 맡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그네들보다 딱히 나은 점이 있어 공부를 잘 하는 학생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곤 학교에 대한 적응 외에는 얻은 것이 없었던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저에게도 고등학교에서의 첫 여름방학이 찾아옵니다. 720분 등교에 6시 하교. 저에게 주어지는것만을 하나둘 채워감에도 빠듯했던 저에게 그 시간들이 저에게 큰 의미가 없었음은 이전학기의 생활을 미루어 봤을 때 너무나 당연했습니다. 그러다 개학 전날에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집에 돈이 많나? 내가 빽이 있나?' 어쩌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됬는지는 모릅니다. 다만 학자라는 꿈이 있었던 저에게 크나큰 충격을 준것만은 확실했습니다. 이렇게 어영부영 살다가는 결국엔 적당한 대학에 들어가 취직에 온 젊음과 정력을 쏟아부어 어린시절의 꿈같은건 기억 저편에 내팽개치고 살고 있을 저의 모습이 너무나도 선명히 보였습니다. 전 저의 꿈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그때 제가 든 생각은 하나였습니다. ’공부를 하자‘.

개학첫날 전 모든 것을 바꾸었습니다. 아침 식사 자리에는 반찬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어색한 책이 놓여져 있었고 등교 셔틀을 기다릴때도 ,그리고 등교셔틀 안에서도 저의 손은 책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쉬는시간 역시 없애 버렸습니다. 그 짧은 10분이 뭐 그리 아까워서인지 저는 단한번도 일어나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한 채 무언가에 홀린 것 마냥 당시 저에게는 얼음장의 철근과도 같이 무겁고도 차가운 의자에 앉아 묵묵히 머릿속을 활자들로 채워갔습니다. 그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전 그 견고히 짜여진 것 같지만 위태위태하던 생활을 계속해나갔습니다. 오히려 너무 견고히 짜여져서 단 한곳에라도 빈틈이 생기면 모든 것이 무너질 듯 전 항상 고뇌하고 걱정했습니다. 한번의 낮잠이 결국엔 매일의 나태로 이어질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고 한번의 일탈이 결국엔 인생의 일탈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루를 온전히, 다하고 집에 도착했을때는 12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때 제 취미는 불빛하나 피어오르지 않는 어두운 방에 앉아 야경을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생각을 할수 있는게 너무도 행복했습니다. 하루동안 억지로 밀어넣는 활자들이 제 머릿속에서 사라진그때가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제 사고의 자유가 제가 가장 갈망하는 안식처가 될 때까지 전 제 자신을 언제고 억메어 두었습니다. 그런 생활이 저에게 첫 번째 눈물을 안겨주었던 때는 바로 2학기 중간고사때였습니다. 3.5에 가까웠던 내신 평점이 2.4가 된것입니다. 그때 어렴풋하게나마 전 확신했습니다.“이렇게만 하면 할수 있겠다”.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때부터 고등학교 2학년때까지의 저의 생활은 정말로 짤막하게 표현할수 있습니다. 저에겐 이미 낮이 사라진 풍경들만 보였습니다. 새벽동이 틀때쯤 일어나 책에 머리를 파묻고 고개를 들면 언제나 어제의 별이 다시금 떠 저를 지켜보았습니다. 전 그때쯤 조금더 힘든 사투를 벌이게 됩니다. 이전까지의 목표가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면 그때 제 목표는 아예 고개를 들지 않는것이었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런 생각을 먹은 뒤에 고개를 들면 뻣뻣했던 목의 고통보다는 생기를 잃고 뻣뻣하게 굳어가는 것 같던 제 정신이 더욱 걱정스러웠습니다. 맨 앞자리에 앉아 교탁이 제 눈앞에 버티고 있을때면 교탁에도 포스트잇을 붙여 제 머리가 공부에서 떠나가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늪에 빠져 하루 이틀을 지내고 ,여름방학이 지나고 2학기 9월 모의고사에서 전 두 번째 눈물을 흘리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1학년 시절 소홀히 해 전교등수가 340등까지 내려갔었던 모의고사 성적이 전교4등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는 동안 제가 간과하고 있었던게 하나 있었습니다. 제 몸은 그만큼 망가져 가고 있었단느 사실을요.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액땜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큰 사고를 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만 손가락을 다쳐 오른손에 한달동안이나 깁스를 하게 된것입니다. 그때 저의 의식 저변에 있는 무엇이 저의 왼손을 움직이게 만들었습니다. 슬퍼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번 슬퍼했다가는 헤어나올수 없을꺼 같아 그 어떤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오른손이 풀리듯 날씨가 한껏 풀어진 봄에 전 어엿한 고등학교 3학년생이 됩니다. 그때 무엇인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성격에도 맞지않는 반장을 한 때문인지 성적은 끝없이 추락하고 제가 보는 모든 것에서 밝은 빛은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다만 그때까지 지속해오던 것은 무너질 듯 위태위태한 이전의 생활이었습니다. 저는 당시만 해도 알고 있었습니다. 무엇인가 문제가 생긴것을요. 그렇게 그 문제는 가장 중요한때에 피할수 없는 높고 거센 파도가 되어 저를 덮쳤습니다. 9월모의고사가 끝난 직후 저는 입원을 했습니다. 그때에 유행하던 폐렴이 원인이었습니다. 원래 큰 병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이미 지칠때로 지치고 망가질때로 망가진 저에게 있어서 폐렴은 어떻게 보면 폐암보다도 제 정신을 자비없이 갉아먹는 존재였습니다. 한달동안 전 침대에 누워 TV를 보는 것 이외에 그어떤 일도 할수 없었습니다. 사실 그때는 어느정도 체념한 뒤였습니다. ‘남들 다 하는 재수 나도 하지 뭐. 나라고 피해갈수 있나’.하지만 이런 제 생각이 틀렸음은 퇴원하고 며칠 후에 치른 모의고사에서 였습니다. 그 모든 고통을 보상이라도 하듯 제 성적표에는 반 1등이라는 글자가 적혀있었습니다. 그때 전 생각했습니다. ‘아직 하늘이 날 버린게 아니구나’. 그럼에도 제 인생은 곧게가길 거부한 모양이었습니다. 서울대는 바라도 보지 않았던 저에게 유일한 목표는 연세대 교육학과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글로벌리더전형에서 보기 좋게 떨어지고 맙니다. 그러한 우울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저는 수능을 보게됩니다. 사실 제가 그때 어떤 기분이었고 심지어 어떤 날씨었는지 조차도 별로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다만 확실히 기억나는 것은 성균관대정도를 적정수준으로 말하던 입시 컨설턴트의 말 뿐이었습니다.

12월 첫째주인지 둘째주인지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만 저에게 있어서 큰 일이 있었던 때인것만은 분명합니다. 화요일에 전 연세대 논술전형에서 떨어졌고 목요일 고려대 논술전형에서 역시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금요일, 128553, 전 서울대학교에 합격하게 됩니다. 눈물도 나지 않았고 그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남들이 다 느낀다는 그 흔한 희열조차 없었습니다. 그저 안심했고 고마웠습니다. 지금까지 버텨준 제 자신에게 고마웠고 더 이상 제 몸을 헤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더욱 안심했습니다.

 

 

 

사실 제가 그렇게 남들보다 치열하게 살았다고 말할순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당시에 제가 흘렸던 눈물은 진심으로 빛났으며 대학에 들어와선 한순간도 그러한 눈물을 흘려본적이 없습니다. 머지 않은 미래에 제가 그러한 눈물을 다시금 흘릴수 있길 그리고 여러분들도 그 눈물의 의미를 알수 있길 바라며 이만 글을 줄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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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35 · 318465 · 13/11/27 00:37 · MS 2009

    이런 자세라면 장래에 뭔가 해 낼 학생인 것 같네요. 대학 브랜드가 문제가 아니라 그러한 치열한 자세와 성공체험이 인생 전체를 이끌어 갈 큰 재산이 될 것입니다.

  • 정연일 · 147960 · 13/11/27 11:59 · MS 2006

    전 아직 족고딩이라 이 수기 이해하지 못하겠어요ㅠㅠ

  • 설대17학번 · 511411 · 14/06/27 00:53 · MS 2014

    그 의지력과 끈기에 정말 찬사를 보냅니다. 책상에서 눈을 떼면 어제의 별들이 보인다는 말에 정말로 마음이 간질간질하면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