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비ver.] 당신에게 지금 단 한 번의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난 독학재수를 결심했다.
지금은 2월 중순, 곧 3월이다.
역시나 인강을 듣는척하며 컴퓨터에 앉아있다. 아직 모의고사 성적을 받은 게 아니라 크게 부담되진 않는다.
그렇게 하루하루 흘러 3월 본격 재수 시작이다. 오르비에선 전부 방학 때 공부를 시작도 안했다고 한다. 마음이 놓인다.
3월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기 시작한다. 주변 아이들 모두 수능대박이라는 문구를 책상에 써둔 채오로지 책만 바라보고 있다.
'그래 애들 다 이제 공부 하는구나 그럼 나도..'
3월 첫 모의고사
'점수가 이게 뭐야.. 그래도 뭐 아직 3월이니깐'
3등급 모의고사 성적표를 옆에 고이 던져둔다.
4월, 5월
제일 불타는 때이다. 이때 동안 푼 모의고사는 한 뼘 정도 높이가 되고 손가락엔 굳은살이 베긴다.
하지만 뭔가 허전하다. 무언가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 갑자기 인생의 회의를 느낀다.
'공부가 인생의 다인가?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책을 집어던지고 컴퓨터 앞에 앉는다. 기분이 상쾌해졌다.
6월, 7월
주변에선 이 시기가 수능대박의 마지막 기회라고 한다.
'마지막 기회? 뭐 똑같이 열심히 하면 되지'
날씨가 찌는 듯이 덥다. 몸이 나른해진다. TV에선 해운대 앞바다에서 뛰놀고 있는 사람들.
'아 더워 짜증나게. 좀 쉬자' 아침부터 선생님과 아이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은다.
그렇다. D-100일이다.
'응? 100일 남은 거야? 100일이라... 별로 안남은건가? 그렇지.. 오늘부터 각성 좀 해야 겠다'
나름대로 빨간 매직으로 책상모서리에 D-100일을 써놓는다.
그 글씨를 꾸미고, 스티커를 붙이고, 옆에 나름 유명한 명언을 생각하느라 1시간을 보낸다.
집에 도착하니 엄마가 통닭을 시켜놓았다. 통닭위엔 메모가 있다.
'아들 수능 100일 남았네.. 공부 잘 하고 있지?'
'마지막까지 힘내고 수능 때 웃어야지!^^ 아들 사랑해'
TV를 보며 통닭을 뜯는다. 배부르니 졸리다.
다음 날 오르비에 가니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 걸 느꼈다. 수능을 남긴 날이 두 자리 수로 바뀐 거에 상당히 영향이 큰가보다.
미친 듯이 공부하는 아이들.. 한편 수시에 합격한 오르비언은 나를 자꾸 부추긴다.
또 벌써부터 수능을 포기한 아이들도 있다. 공부를 하고 있는데 오르비언들은 또 정치 얘기를 한다. 그 얘기에 집중을 한다.
서서히 시간이 흐르고 D-50일이다.
'아 3월 모의고사 본적이 몇 일전 같은데.. 50일이라니' 친구들끼리 입을 모아 떠든다.
수능이 한달 하고 조금 더 남았다는 압박감도 있지만, 또 다른 뜻으로 인생의 해방감을 느낄 수 있는 게 얼마 안 남았다. 기대되기도 한다.
50일을 남겨둔 채 책상에 앉아 그동안의 공부실력을 알아보기 위해 모의고사를 한회 풀었다.
벌써 풀다 지쳐버린다. '졸리니 좀 있다 하자..' 집에 오니 엄마가 부르신다.
수능 50일 남겨뒀는데 마지막까지 잘하고 있냐고. 대충 둘러대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엄마는 안심한다...
수능이 한달남았다.
모의고사를 새로 풀면 왠지 내 수능성적이 바로 나올 것 같은 두려움에 오답노트와 개념정리를 했다. 왠지 느낌이 좋다.
벌써부터 새로운 대학생활이 설렌다. 컴퓨터로 목표로 삼았던 대학의 캠퍼스 사진을 보고, 블로그를 구경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이제 얼마 뒤면 나도 이 캠퍼스에 발을 딛는 거야...'
수능이 일주일 남았다.
많은 입시사이트에선 지난 1년을 되돌아보라고 한다. 갑자기 숙연해진다.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후회된다. 눈물을 쏟는다. 이해가 안 간다.
그 동안 열심히 한 것 같았는데...
내일은 수능 날이다.
수험표를 접수하고 시험장의 교통편을 알아본다.
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물을 마시러 나왔는데 엄마가 기도를 하고 계신다. 조용히 다시 들어가 잠에 든다.
수능 날 아침 엄마가 유난히 일찍 깨운다. 엄마가 싸주신 죽을 싸들고, 아빠가 태워주신 차를 타고 시험장에 도착했다.
갑자기 몸이 떨린다. 추워서 그러겠지. 응원 나온 후배들의 초콜릿을 먹으며 진정을 시킨다. 수험번호를 보고 시험장을 찾는다. 창가에 햇살이 드는 내 자리에 앉았다.
손이 떨린다. 손을 잡는다. 처음으로 기도를 해본다. 엄마는 교문 앞에 서서 절을 하고 계신다.
1교시 언어영역
8장의 많은 시험지.. 익숙하지 않다.
낯선 문학작품. 어려운 과학지문.
제기랄...
2교시 수리영역
난 9월 이후로 수리를 포기해버렸다.
그래도 운빨 하나는 끝내주니깐.
찍은게 다 맞아서 1등급 나오는 거 아니야?
3교시 외국어영역
자신 있던 영어듣기였는데
왜 머릿속이 하얘지는 건지 모르겠다.
45번 문제를 풀고 있는데 종이 쳤다.
4교시 탐구영역
내가 제일 좋아하는 탐구영역.
지난 수능 땐 소홀했어도 올해만큼은 사탐의 신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너무 기억이 오래되어 소진 됐나보다.
201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종료 하겠습니다.
전국의 65만 수험생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아이들은 기쁨의 환호성인지 발악인지 모를 소리를 질러대며 학교를 나온다.
어두워졌다.계단을 내려오는데 다리에 힘이 풀린다. 갑자기 한숨이 나온다.
엄마가 언제 왔는지 달려와 말없이 안아주며 수고했다고 한다. 이유는 모르지만 갑자기 엄마한테 미안해졌다.
이제 내 대학발표만 앞두고 있다. 알바를 하며 대학교 때 입고 다닐 옷들을 산다.
벌써부터 대학생활을 몸소 느껴 두근거린다. 내가 지원했던 3개의 대학교.
첫 번째 1지망의 학교 발표 날이다. 솔직히 기대는 하지 않는다. 내겐 너무 과분한 것이었다.
12.12.28 Y대학교
합격자명단의 귀하의 이름이 없습니다.
엄마는 그 날이 합격자 발표인줄 알고 계셨지만 내 표정을 알아차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대신 서로 2번째 희망대학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이번만은 반드시!!!'
인터넷으로 합격자 명단이 떴다. 차마 확인 버튼을 누를 수가 없었다.
마우스를 잡은 손이 어찌나 떨리는지. 마음 다잡고 마우스를 딸깍- 하였다.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이번만은 믿었었는데... 그래도 이번엔 예비번호라도 받았다.
S대 예비 125번
추가합격자 전화는 끝내 오지않았다.
전화기를 붙잡고 마지막 12시 뻐꾸기가 울리자 눈물이 흐른다. 부모님은 이미 다 알고 있다.
잠이 안와 뒤척이는데 조용히 옆방에서 엄마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다 끝난 건 아니잖아. 내겐 마지막 기회가 있다..'
'J대.. 여태껏 바래오진 않았지만 나의 마지막 희망이다'
오르비에 들어가 게시판에 글을남겼다.
내 부끄러운 수능 성적을 올리고 합격할 수 있는지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댓글에는 합격할 수 있다며 힘내라는 글이 쇄도했다. 조금 마음이 놓였다.
'대학.. 좀 안좋은 데 가면 어때? 재수하는 것보단 낫지! 대학 들어가서 장학금이나 받아서 부모님한테 효도해야지'
13년 2월 3일 J대 합격자 발표일
잠을 설쳤다. 가슴이 쿵쾅쿵쾅 뛴다.
이번은 인터넷이고 전화고 뭐고 엄마랑 손잡고 직접 입학처에 찾아가게 되었다.
몇 시간을 서서 기다려 합격자 명단이 나왔다. 손이 떨리고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내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본다. 내 이름이 없다.
안경을 쓰고 다시 찬찬히 찾아본다. 내 이름은 없다...
아무 말 없이 집에 돌아와 방문을 닫았다.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어영부영 보낸 지난 1년이 필름처럼 스쳐갔다. 엄마가 노크를 하며 괜찮으냐고 묻는다.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저 계속 눈물만 흐른다. 전화가 온다. 소리 내서 운다.
이렇게 서럽게 운적이 있었을까? 미치도록 후회가 된다. 난 인생의 최대 실수를 하였다.
후회라는 단어가 한없이 작게 느껴질 만큼 시간을 돌리고 싶다.
3월 모의고사를 보던 때로.. 아니 100일전이라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한다.
엄마 죄송해요... 하나님... 제발... 내 자신이 너무 싫다.
재수를 결정하고 노력하지 않은 내가 너무 싫었다. 지금 와서 후회한다고.. 뭐가 변할까..
하지만 난 진심으로..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열심히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일 뿐. 그렇게 울다 지쳐 잠이 들었다.
" 아들~~~ 일어나 도서관가야지!! "
' ...? '
" 빨리 일어나서 밥 먹어~ "
'도서관? 이제 도서관은 안 가는데...'
무심코 핸드폰을 열었다.
'응??'
[ 2012년 4월 16일 ]
'지금은... 2013년도인데...'
'뭐지?'
'이건 1년 전이잖아.'
'그럼... 하나님께서... 내게 기회를...'
당신에게 지금 단 한 번의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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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이네요...
추천드려요
감정이입하며 읽었습니다
오늘 7시 20분에 도서관에 갔는데..놀토임을 깜빡하고..좀 늦게 갔는데..251석 중 한자리도 없어서 멘붕;;;
독서실은 9시부터 열어서 그냥 오늘은 집에서 하려고 했는데..확실히 집에선 잘 안되네요..
밥 먹으면서 오르비 잠깐 왔는데..아주 굿 타이밍이네요 ㅠ
모두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갑시다...
소름돋네요 충분히 교훈있는 픽션이었네요..
아....분명히 자극돋는 글인데 너무 많이봐서 이게 뭔가 재밌다 미치겠네 ㅋㅋㅋㅋ공부하러 가겠습니다.
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마지막줄 읽기전까지 공감되면서 마지막줄을 읽으면서 실패했던 날들에 대한 반성과 흔들리는 마음을 되잡게해주는 좋은 글이네요 나이먹고 다시도전하는터라 고민도 많았는데 좋은글 감사합니다 ㅋ
좋은 글이네요. 연간계획의 필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ㅋ
흐.. 정말 소름돋네요..
마지막 말에서 소름돋았어요.. 진짜 열심히 해야겠다
매우 좋은글이네여^^
다시 그때가 생각나는것 같네여..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들게하는 아주 멋진 글이였습니다!
추천을 드리지 않을 수가 없네요. 삼수할 때 맨날 저런 꿈을 꾸며 식은 땀에 푹 젖은 채로 아침에 일어났죠. 정말 재수이상을 하게 되면,특히 삼수쯤 하게 되면 하루하루에 대해 감사함을 갖게 됩니다. 정말 공부하는 그 순간 순간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죠. 그 소중함을 알기에 그나마 좋은 대학에 가게 되더군요.(비록 원하는 대학+학과는 아니지만..사과대 쨔응 ㅠㅠ) 저런 기분을 제가 가르치는 녀석도 알면 좋으련만...아직 고3현역이라 패기만 넘쳐서 큰일이네요 ㅡㅡ
ㅠ excel님 칼럼 안쓰실 예정인가요 ㅠ
쓸라고 했는데 이리저리 치여서....죄송합니다. ㅠㅠ .그리고 지금 중간고사+방과 후 학교 교육봉사+팀플 2개+과외2개(한명은 고2인데 나머지 한명이 고3이라서 이 녀석에게 집중해야 합니다.어떻게든 sky중 하나는 보내야죠.거기에 애초 삼수할 때 부모님께 스스로 내 건 조건이 `합격하면 등록금만 내라,대신에 생활비는 내가 벌겠다`라고 해서 하는 겁니다.)+행정고시 1차 및 2차 시험공부... 그래서 하도 잠을 못 잤더니 불면증까지 생겼습니다.덕분에 몸도 너무 많이 상했습니다.대신에 문학관련 팁이나 중간고사 끝나고(아마 다음 주 쯤?) 올릴려고 합니다.추가로 칼럼은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행시관련은 안 좋다고 말하는 게 대부분이라서 앞으로 올라올 교육청이나 평가원 모의고사에 대한 1~50까지 해설이나 쓸 생각입니다.(그러고 보니 6월 평가원 칠 때 쯤이면 나 기말고사 잖아? 완전 죽어 나가겠네? 하하하...인사장만 받았어도 이렇게 피터지게 안 살아도 되는데 ㅠㅠ)
글읽다가 이렇게 소름돋고 특히마지막에서 ㅜㅜ 감정이북받쳐 오른적은 첨이에요 ㅜㅜ 방금 20분 잤던거에 제가너무 한스럽네요 ㅠㅠ 좋은글 감사합니다 ㅜ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잘봤습니다!
아.. 소름 돋네요.. 정말..
현역이긴하지만 자극받고가요ㅎ
앞으로 몇년 동안 더 같은 기회가 주어질지 두렵다
기회는 단 한 번입니다. 수능 끝났을 때 그 허무함과 패배감을 기억하며 간절함 속에서 살아가세요.
작년이맘때도 본글 같군요...재수중
정말 정신이 번쩍 드는 글이면서,, 머지않은 일인거 같아 가슴이 아립니다.
쪽지드렸어요 .확인부탁드릴게요
정말 소름돋네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해이해져서 왔는데 정시 발표 기다리는 부분에서 눈물이 왈칵 나네요. 딱 내가 저꼴이었는데 난 뭐하고 있었던건지. 감사합니다. 다시 정신차리고 갑니다.
여러사람 인생 바꿀글이네요